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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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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응급의료종사자 대상 수기 공모전 수상작 [그 날, 나를 살린 건 그들이었다.]
구분 : 공통 등록일 : 2026-02-23 조회수 : 9

2025 응급의료종사자 대상 수기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수상작을 공개합니다!

의료진을 지킬 수 있었던

그 날의 한 마디를 만나보세요.


그 날, 나를 살린 건 그들이었다.(정해린)

응급실은 늘 시끄럽고, 늘 긴박하다. 삶과 죽음이 매일 오가는 그곳에서, 사람들은 울고 웃고, 그리고 무너진다. 그 혼란 속에서도 내 마음을 늘 따뜻하게 해주시던 한 분이 계셨다.

 

간성혼수로 자주 오시던 할머니였다. 의식이 없이 내원하시지만, 치료 후 눈을 뜨시면 꼭 예쁘게 웃어주셨다. 그 웃음은 참 맑고, 참 고왔다.

피부가 투명할 정도로 맑으셔서, 처음엔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늘 두 따님이 함께 오셨는데, 서로를 대하는 모습이 다정했다. 그분들은 나에게 환자 그 이상이었다. 정이 쌓였고, 마음 한구석이 늘 따뜻해졌다.

 

이 일을 오래 하려면 감정을 너무 쏟지 말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 나도 사람인데. 그날도 그렇게 하루를 버티며 환자들을 분류하고 있었다.

 

병원 인근에서 대형 연쇄추돌 사고가 났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그 시절엔 지금처럼 체계적인 대응 시스템이 완전히 갖춰지지 않았던 때라 중증환자들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순식간에 응급실은 전쟁터가 됐다.

 

그때였다. 한 구급차 문이 열리며,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할머니였다.

다른 환자들을 먼저 분류하기 시작했다. 중증외상 환자, 호흡곤란 환자, 골절, 실신, 출혈…

모든 환자를 처리하고 나서야, 비로소 할머니에게 갔다. 두 따님이 내 눈을 보며 조용히 웃었다.

 

그 순간,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그 ‘느낌’, 의료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는 바로 그 감각이었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

나는 CPR 방송을 띄웠다.

 

3년 차 응급구조사였던 나는 침착하려 애썼지만 심장은 제멋대로 뛰었고 손끝이 떨렸다. 눈물과 콧물이 섞여 마스크 안이 뜨거워졌다. 심장은 돌아왔지만, 이미 늦은 타이밍이었다. 현장은 다시 조용해졌고, 나는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땀범벅이 된 내 어깨 위로 누군가의 손이 닿았다. 두 따님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원망이라도 들을 줄 알았다. 욕을 들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분들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최선을 다했으니 울지마요. 연세가 많으셔서 언제든 준비하고 있었고, 선생님을 만나서 할머니의 남은 인생이 좀 더 유쾌하고 예쁘게 정리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동안 버텨왔던 감정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그날 그렇게 많이 운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날 그분들이 해준 말이 나를 다시 일어서게 했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무너지지 말고, 평생 이 일을 하며 살아주세요, 꼭.”

 

그로부터 17년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응급의료 종사자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동료들과 함께 살려냈다. 때로는 버겁고, 때로는 두려웠지만 누군가의 마지막이 조금 더 따뜻할 수 있다면, 그 이유만으로도 충분했다.

 

가끔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살린 사람들은 어쩌면 그날 나를 안아준 그분들이 대신 살려낸 게 아닐까 하고. 그분들이 내게 남긴 말이 아직도 내 안에서 숨 쉬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믿는다. 내가 하는 이 일이, 누군가의 세상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만든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늘 할머니가 보여준 그 웃음처럼,

그 따님들이 내게 건넨 그 위로처럼.

그날, 나를 살린 건 분명 그분들이었다.


2025 응급의료종사자 대상 수기 공모전 마지막 작품 공개까지

함께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2026년에도 새로운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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