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기
열기

본문 영역

공지사항

중앙응급의료센터의 공지사항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2025 응급의료종사자 대상 수기 공모전 수상작 [한 번도 못 안아줬는데, 이제서야.]
구분 : 공통 등록일 : 2026-01-05 조회수 : 189

2025 응급의료종사자 대상 수기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수상작을 공개합니다!

응급의료 현장에서의 한 장면을

담담하게 풀어낸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한 번도 못 안아줬는데, 이제서야. (정*정)

중환자를 만나면 전투력이 끝까지 차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와라, 싸워주마. 나는 이 생명줄을 붙들고 놓지 않을 것이니. 하지만 중환자를 본다는 건,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는 것. 패장이 되는 날이 수없이 많았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다.

환자가 많던 겨울 새벽이었다. 밥 때를 놓쳤다. 겨우 컵라면 하나 물 부어놓던 찰나에 전화벨이 울렸다. 전공의의 다급한 목소리. "선생님, 환자가 이상합니다."

무슨 소리야. 밑도 끝도 없이 '환자가 이상하다'라니? 그런데 뒤쪽에서 "빨리 선생님 오시라고 해!" 하며 들리는 소리들이 심상치 않았다. 소생실로 뛰어갔다. 그랬다. 환자가 이상하다는 표현은, 경험이 없는 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이었다. 소생실에 경피위루관(PEG: 경구영양이 어렵거나 충분하지 못한 경우 바로 공급하도록 만들어둔 관)을 꽂은 아이가 온몸이 새파랗다 못해 보라색을 띤 채 누워 있었다.

혈액 순환을 보는 간단하지만 유용한 방법 중 손발톱을 눌러보고 색깔이 돌아오는 시간을 보는 것이 있다. 정상적으로는 2초 이내에 돌아오는데, 그 이상 시간이 걸릴 경우 심한 출혈이나 패혈증, 탈수 등의 상태를 시사한다. 아이는 4초가 넘게 시간이 걸리고, 호흡이 얕고 가빴다. 청진음 자체는 특이소견이 없었지만 복부가 빵빵하게 부풀고 딱딱했다. 혈압이 측정이 되지 않을 만큼 낮았다. 병력을 확인하니 내가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유전병이 있었고, 전날부터 구토를 하고 처졌다고 한다. 오늘 새벽부터 배가 부풀어오르고 내원하다 구토를 1차례 하며 아이의 피부색이 새파랗게 질렸다고 했다. 토사물이 기도로 넘어가 생기는 흡인성 폐렴과 질식, 그리고 복강 내 감염으로 인한 패혈성 쇼크. 두 가지를 염두에 두었다.

즉시 확보된 정맥 혈관으로 생리식염수를 대량 투여하고, 승압제와 광범위 항균제 투여를 함께 시작했다. 쇼크 상태의 아이들이 그러하듯 혈관 확보가 어려워 중심정맥관 삽입을 준비하고 아이의 의식이 처지고 호흡이 얕아 기도 삽관을 했다. 삽관을 하며 보니 토사물이 목에 걸려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패혈성 쇼크에 더 무게를 실었다.

혈액검사 결과 중 정맥혈 가스 검사 결과가 나왔다. 심각한 대사성 산증. 수액을 대량으로 두 차례 투여했음에도 소변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혈중 칼륨 농도도 정상치를 아득히 벗어나 있어 함께 처치하는데도 환아의 상태는 좀처럼 좋아지지 않았다. 산증도, 고칼륨혈증도 호전이 없고 혈압은 점차 떨어지기만 했다. 지속적 신대체요법(CRRT)이 당장 필요한 상황인데, 우리 병원에서는 불가능했다. 전원을 해서 바로 시작한다고 해도 환아를 살릴 수 있을지가 미지수인 상황이지만, 최대한 버티며 전원을 하는 게 최선이었다.

환아가 유전병으로 다니던 병원부터 시작해서, 주변의 큰 병원들에 전원 문의를 시작했다. 성인도 중환자실이나 중환자실의 장비, 특히 CRRT가 늘 모자란 편인데, 소아는 더했다. 소아의 투석 자체를 하는 병원이 매우 드물기 때문. 수용이 가능한 곳이 없었다. 그 사이 아이의 맥박은 점차 느려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약을 써도 대사성 산증도 고칼륨혈증도 교정이 되지 않았고, 결정적인 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보니 환아도 더 이상 못 버틴 것이다.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손 안에 쥐려던 생명의 끈이 스르륵 빠져나가는 것 같은 감각이 있다. 아무리 쥐려고 노력해도 생명줄이 모래알처럼 흩어져 내 손 밖으로 떠나는 느낌이 있다. 안 되겠구나. 보호자들을 불렀다. 상황을 설명드리고 이번 심폐소생술 사이클 후에도 자발순환이 회복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을 것으로 판단되니 중단하기로 했다. 단 한 번만 돌아와주기를 바랐던 마지막 사이클 후에도 아이의 심장은 다시 뛰지 못했다. 사망 선언을 했다. 작은 몸에 꽂혀 있던 각종 관을 정리하고 나서 다시 아이를 보여드리니 아이의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이제는 안아줘도 되냐고. PEG 만든 이후부터 관이 빠질까봐 한 번도 아이를 안아주지 못했는데, 이제는 안아줘도 괜찮겠냐고.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말없이 끄덕이고 패잔병처럼 소생실을 나왔다.

소생실을 나오나 그 사이 나를 기다리는 환아들이 많았다. 눈물은 사치. 찬물 한 잔 마시고 진료를 시작했다. 새벽에 많이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지만, 심장이 멎었던 아이가 있었다고 선수를 치며 애써 웃어보이며 일을 했다. 컵라면은 퇴근할 때 즈음 싸늘하고 퉁퉁 분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상작은 순차적으로 공개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상단으로

Footer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