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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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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응급의료종사자 대상 수기 공모전 수상작 [생과 사의 경계에서 내가 남아 있는 이유]
구분 : 공통 등록일 : 2026-02-09 조회수 : 84

2025 응급의료종사자 대상 수기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수상작을 공개합니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남아 있게 된 이유를 담은 글을 만나보세요.


생과 사의 경계에서 내가 남아 있는 이유(박*현)

응급실과의 첫 만남은 2004년 여름, 학생 간호사로 처음 실습을 나갔던 아주대병원에서였다. 문턱을 넘는 순간, 소독약 냄새와 기계음이 엉켜 만들어내는 묘한 긴장감이 온몸을 감싸 왔다. 침상마다 다른 사연을 지닌 환자들, 그리고 그 사이를 쉼 없이 오가는 의료진들의 발걸음을 바라보며 나는 압도당했지만,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두려움 뒤편에서 조용히 피어오르던 감정, ‘나는 언젠가 이곳을 다시 찾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 예감이 앞으로의 17년을 응급실에서 살아내게 될 나의 시작이었음을.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2020년, 코로나19가 시작되던 시기. 응급실은 말 그대로 전쟁터였다. 전파력이 어디까지인지, 바이러스가 어떻게 퍼지는지 누구도 알지 못한 채 우리에게 매 순간이 위기였다. 방호복 속 답답한 숨, 김이 서려 흐릿해지는 고글, 명확한 지침조차 없던 공포는 지금 생각해도 생생하다.

그 혼란 속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 오랫동안 한쪽 폐만으로 생활해 온 환자가 코로나 의심 증상으로 내원한다는 연락을 받고, 우리는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며 환자를 기다렸다. 의식은 명확했지만 호흡곤란으로 상태는 불안정했다. 고농도산소요법을 적용하자 잠시 호전되는 듯 보였고, 나는 근무시간의 절반 이상을 그 환자 곁에서 보내며 밀접 간호를 이어갔다.

그러나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올 즈음, 환자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결국 기관내삽관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문제는 환자의 보호자는 밀접접촉자로 분류되어 병원에 올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얼굴 한 번 환자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전화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보호자는 얼마나 답답했을까. 환자를 돌보는 나조차 무겁고 숨이 막혔으니 말이다. 보호자는 적극적 치료를 원했지만, 환자는 기관내삽관을 완강히 거부했다. 의식이 명확한 환자의 결정을 무시를 할 수는 없다. 이럴 때 마다 의료진은 윤리적 갈림길에 서게 된다. 결국 보호자에게 모든 상황을 설명한 뒤 고농도산소요법만 유지하며 지켜보기로 했다.

오랜 시간 응급실에 있으면 그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되는 순간들이 많다. 환자에게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환자가 코로나가 아니기만을 바랐다. 그래야 마지막이라도 가족과 온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테니. 하지만 마음속 기대와는 달리 결과는 양성이었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하다 보니, 환자의 변화가 더 깊이 와닿기 시작했다.

나는 환자에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설명했고, 환자는 모든 적극적 치료를 거부한다는 내용에 조용히 서명했다. 서명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눈물이 차올랐다. 앞으로 펼쳐질 과정이 너무나도 선명히 그려졌기 때문이다.

응급실은 늘 긴박하게 흐르는 공간이라 환자와 깊은 유대감을 쌓기 어렵다. 그러나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은 우리를 낯설 만큼 가깝게 만들었다. 임종이 다가오던 순간, 환자는 보호자와의 영상통화를 요청했다. 그 옆을 지키던 나는 울음을 삼키느라 애썼다. 보호자가 “간호사님 바꿔 주세요”라고 말하며 나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을 때, 오히려 그 따뜻한 말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 가장 힘든 사람은 보호자일 텐데.. 감사한다는 말을 듣는 나에겐 가슴을 아리게 했다.

그 장면은 17년간의 응급실 근무 동안 결코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남았다. 응급실은 지금도 혼란과 긴장이 가득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마지막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의 새로운 시작이 되는 곳이다.

나와 함께 시작했던 수많은 동기들은 각자의 이유로 이곳을 떠났다. 그들은 종종 묻는다. “왜 아직도 그 힘든 곳에 있어?” 그럴 때마다 나는 조용히 웃으며 대답한다. “여기는 삶과 죽음이 만나는 경계에서, 오히려 삶의 빛을 더 자주 볼 수 있는 곳이잖아!.” 라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곳을 지킨다. 두려움 속에서도 한 사람을 끝까지 지키려 했던 순간들, 그 순간에서 배운 사명감과 자부심이 나를 이 자리에 남아 있게 하는 이유다.

 

수상작은 순차적으로 공개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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