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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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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응급의료종사자 대상 수기 공모전 수상작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마지막]
구분 : 공통 등록일 : 2026-01-26 조회수 : 115

2025 응급의료종사자 대상 수기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수상작을 공개합니다!

응급의료 현장을 지켜온

의료진의 자부심을 담은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마지막(김*림)

창밖 너머 요란한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점점 귓가에 선명하게 박힌다. 왔구나. 덩달아 요동치는 숨을 고르게 쉬어본다.

침대 바퀴가 덜거덕거리며 응급실 문을 지나 거침없이 소생실로 진입했다. 3개월 된 9kg의 아기의 심정지였다. 두 엄지손가락으로 하는 가슴 압박과 골내 주사를 통한 약물 주입, 인공기도 삽관이 이어졌다. 창백한 피부에 팔과 다리는 축 늘어졌고 가슴만이 압박에 저항 없이 눌려질 뿐이었다. 그때 체온은 ‘low’로 측정되었다. 곧장 온장고에 있던 따뜻한 이불을 덮어주었다. 차갑게 식어가는 작은 몸이 조금이라도 온기를 되찾길 바랐다.

초기 심장 리듬은 무수축이었다. 몇 번의 PEA(무맥성 전기활동)가 나타났지만 다시 무수축으로 이어졌다. 심정지 상태로 오랜 시간 지났고 더 이상 의미 없다고 판단하여 심폐소생술을 중단하기로 했다.

 

기적으로 향하던 우리의 노력이 담긴 시간을 하나둘씩 주워 담았다. 먼저 몸에 있던 여러 삽입관들을 제거했다. 인공기도로 벌어졌던 입술을 닫아주고 정강이뼈에 바늘이 들어갔던 자리를 드레싱 해주었다. 동그란 볼에 묻은 하얀 토사물과 팔, 다리 여기저기 묻은 붉은 피를 닦아냈다. 평소와 가장 비슷하게 깨끗한 모습으로. 그리고선 편히 눈 감은 아기 위로 데워진 새 이불을 덮어주었다. 차디찬 몸에 덮은 이불은 잔인하게도 따뜻했다. 떠나는 마지막은 부디 포근하길 바라며 가슴 어깨 부근을 두어 번 토닥였다.

끝내 살리지 못했다는 무력감. 눈감은 아기 앞에 멀쩡히 서 있는 어른으로서의 미안함. 일찍 떠난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 몰아오는 감정들을 막을 수조차 없이 온전히 받아냈다. 차오른 눈물을 머금은 채 헛기침을 해보기도, 심호흡을 해보기도 했다.

곧이어 보호자 면회를 했다. 언제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울음소리가 소생실 문틈 너머 응급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소생실 밖으로 나와 자리를 비켰고 이내 응급카트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아기의 옷을 보았다. 두 뼘 남짓한 하늘색 줄무늬 옷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애꿎은 옷을 만지작거리며 서서히 꺼져갔을 생명을 생각했다. 이렇게 젖어갈 때까지 얼마나 발버둥 치며 버텼을까. 조심스레 옷을 개어 보호자에게 전했다. 무언가에 막힌 듯 무거워진 목구멍과 뜨거워진 눈두덩이로 인해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담아 옷을 꾹 눌러 전달할 뿐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기를 품에 안은 채 한참 동안 곁에 머물렀다. 오랫동안 애타게 아기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태어난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아이를 떠나보낸 부모에게서 가늠할 수 없는 비통함을 느꼈다. 그들 앞에서 내 눈물은 사치로 느껴졌다. 애써 삼켜냈다. 집으로 돌아와 다 쏟아내고 나서야 나는 제대로 애도할 수 있었다.

 

응급실에선 죽음의 문턱에 있는 이들을 흔히 마주한다. 응급상황에서 내 머릿속은 살리기 위해 해야 할 것들로 가득하다. 오로지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위험에서 건져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안정적으로 스스로 숨 쉴 수 있게 할까에 대한 지식들만 떠오른다. 그러나 죽음이 확실해지는 순간, 의료진으로서 행하는 모든 적극적 처치가 종결되는 순간, 이제야 쓸쓸히 누워있는 눈앞의 생명이 너무나도 안타까워진다. 일면식도 없던 아이인데도 말이다.

삶과 죽음의 가장 앞, 응급실. 이곳에서 일한다는 것은 꽤 부담스럽고도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죽음의 순간은 매번 어렵다. 즉각적인 처치가 늘 소생으로 귀결되지 않지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마지막까지 도움을 줄 수 있어 감사하다. 위험한 찰나의 일선에서 응급처치를 한다는 자부심과 마지막 곁을 지키며 가지런히 접은 옷가지를 건넬 수 있는 순간이 나를 버티게 한다. 이름 모를 한 의료진이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는 것. 그 사실이 환자와 그 가족에게 잔잔한 위로가 되길 바란다.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마지막 손길을 건넨다는 것. 이것이 내가 응급의료에 종사하는 이유다.


수상작은 순차적으로 공개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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